순수성을 따라가다. 소녀 은교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순수성을 따라 갑니다. 3가닥의 감성선의 끝에는 늙은 시인의 메마른 손등도,


처음부터 없었던 문학적 감성이 자신이 것인 줄 착각했던 무모한 공대생의 치기어린 마음도,


단지 사랑만이 필요했던 순수한 소녀의 가슴위에 그려진 헤라속에도 없습니다.


낡은 반책장 속에 숨겨진 원고지 속의 '은교'는 늙은 시인이 소녀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였을뿐



문학적 깊이로 명성을 얻기 위한 도구는 아니였습니다.


이 영화 속에 늙음과 젊음 그리고 여자와 남자를 구분짓는 사회적 통념은 모든 순수성을 가로 막는



커다란 장애물로 3명의 주인공을 가로 막고 구분짓습니다.


그렇게 3명의 주인공은 그 사회적 통념을 뛰어 넘으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상대방을 통해 얻어가며 그 상대방이 남긴 부스러기를 쫓아 갑니다.


헨델과 그레텔의 과자부스러기처럼 상대방이 남기는 감성선은


늙은 시인 이적요에게는 젊음을 갈망하는 순수한 사랑으로



소녀 은교를 향하며, 소녀 은교에게는 외로움을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어린 소녀의 풋사랑으로 소설가 지우를 향하며,


소설가 지우에게는 자신이 영원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스승



이적요의 문학적 감성과 명예에 대한 열등감으로 향합니다.


이러한 감정의 고리는 어느샌가 순수성을 벗어나 꼭 갖어야만 하는



욕심으로 변심되어 영화속 극중 인물들의 감정을 극으로 치닫게 합니다.




이렇게 순간 끊어져 버린 감성선은 서로를 향한 적대심으로 변심되고 결국에는



서로에게 커다란 화살로 ....모든 선을 끊어 버립니다.


-서지우의 죽음은 이러한 연결고리를 끊어 버림으로써 이적요와 은교의



사랑을 연결하는 장치가 아닌 감성선을 끊어 모든 상황을 파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적요와 서지우 사이에 끈은 은교가 아닙니다.


서지우와 은교 사이의 끈은 이적요가 아닙니다.


은교와 이적요 사이의 끈은 서지우가 아닙니다.


어떠한 결말이든 행복 할 수 없습니다. 정해진 레일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리는


다음정거장 그리고 그 다음 정거장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는 목적지에서 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은교는



더욱더 예리한 칼날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냅니다.


목적지를 아는 것 만큼 슬픈 일은 없습니다.


날카로운 연필이 슬픈 것처럼...


reviewed by SJ






시인 이적요 왜 감독이 젊은 박해일을 캐스팅 했는지 알 것 같다.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정말 나이든 노인의 감성이 아니라 순수한 청년의 감성이 필요 했다.







순수하기 때문에 동경했던 걸까? 그렇게 늙은 시인은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서지우에게서 소녀 은교는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오히려 서로를 연결하는 연민과 같은



감정으로 또 다시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모두에게 다 똑같은 것은 없다.   김춘수의 꽃처럼 특별한 의미가 부여 되었을때



비로서 사물은 그것의 생명력을 갖고 나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



소녀 은교에게 거울은 단순한 거울이 아닌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특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 이적요가 특별한 사람이 되었고, 서지우가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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