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신과 인간 그리고 로봇, 생명...


신이 우리에게 을 주어 문화를 이루었다면

우리는 다시 그 불로써 이 되고자 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인간문명, 아니 생명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의 답을 찾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 해답을 우리는 각기 다른 수많은 종교에서 찾거나

과학이라는 또다른 방법론에서 찾는다. 분명 서로 상반된 입장이기 때문에

누구의 눈에는 불신론자로, 또 누구의 눈에는 미신을 믿는 미개인으로 비추어 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해답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종교를 비판하는 영화도, 과학의 궁극적인 경지를 찾는 영화도 아니다.

단지 인간 본연의 목적을 탐구하는 영화이다. 시간을 여행하는 우리는 편도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다. 그 여행속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죽음으로써 여행을 마치게 된다.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는 여행을...- 어쩌면 영속된다는 것은 의미없는 왕복여행

같이 되며 인간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처음부터 우리의 시작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연론'이 아닌 '결정론'에 입각한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신'이라고 부르는 매개체로부터 형성됨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작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왜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멸하고자 하는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이다.-에일리언을 통하여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엔지니어'의 시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는 단순히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러한 피조물에 대한 권한 또한 자신들에게 있음을 에일리언을 통하여 이야기 한다.

-결국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무기에 자신들이 당하는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인간은 단순히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의 죽음이라는 권리 또한 인간에게 없음을

이야기 하며 그들 스스로 인간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인간과 로봇의 관계 속에서 여실없이 나타난다.


우리가 우리의 복사물인 로봇을 만들어 로봇에게 행하듯이 말이다.

인간은 로봇의 자아성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로봇은 단순히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일뿐이다.

언제든지 로봇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따라 파괴할 수 있다.'

인정하는가? 로봇에게 권리를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로봇이 우리에게 도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은 지구도 되돌아 가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다.

그녀가 선택한 것처럼 우리는 한번 떠나면 되돌아 올 수 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여행자이다.

그녀가 또다시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떠난 것처럼...


영화가 정말로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해답을 이야기 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의 가설이고, 하나의 이야기 일 뿐이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고 편안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지금의 삶에 행복함을 찾는 것이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인간본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냥 우리 삶의

행복한 마침표 일뿐이다.


reviewed by SJ






2023 피터웨인의 ted 연설동영상, 이 새로운 바벨탑의 시작은 여기서 부터....



로봇은 인간이 신과 동일한 선상에 서게 됨을 알리는 또다른 신호,

로봇에게 인간은 또다른 신의 형태가 된다.


프로메테우스호가 발견하고 가져올려고 한 것은 단순히 우리 삶의 근본적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어쩌면 데이빗-로봇-은 우리를 투영하는 거울과 같다.

영화 속 인간들 보다 핵심에 근접하여 사심없이 바라 볼 수 있다.

데이빗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로지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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