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VS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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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0년 1월호)가 '지난 10년 동안의 최고 CEO'로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를 뽑았습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스티브 발머는 명함도 못 내밀었습니다. 전 세계 CEO 1999명을 대상으로 한 HBR의 평가에서 100위권(The 100 Best-Performing CEOS)에도 못 들었죠. 스티브 발머의 굴욕이라 할 만합니다. HBR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경영 전문지죠.
 
스티브 발머가 이렇게 외면을 당한 건 물론 MS의 실적 부진 탓입니다. 그런데 스티브와 스티브의 격차엔 두 사람의 프리젠테이션 능력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설명회를 하고 나면 애플의 주가가 10%가량 오르고 경쟁사 주가는 5%쯤 빠진다고 하니 이렇게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최철규 IGM(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의 강의(CEO의 파워 프리젠테이션)에서 접한 잡스의 PT 능력은 가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쳇말로 PT의 달인이라 할 만했습니다.
그 는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키 메시지'에 담아 잘 짜여진 '스토리 라인'을 구사하면서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스토리 라인은 현재 고객이 처한 상황, 고객의 니즈, 목표 달성의 걸림돌, 해결책, 미래에 닥칠 상황 등 교과서적인 단계를 충실히 밟았죠. 쇼로 보여주는 능력도 탁월했는데, 아이폰으로 구글 지도에 접속해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 점포를 찾아낸 후 전화를 걸어 커피 4000잔을 주문하고는 바로 전화 받은 스타벅스 점원에게 장난 전화였다고 사과했습니다. 적절하게 유머를 구사한 것이죠.



반 면 발머의 PT는 어조에 강약이 없어 단조로웠습니다. 연설을 한다기보다 끊임없이 주절거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포즈의 활용도, 제스처 구사도 서툴렀습니다. 청중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들과 눈을 맞추는 아이 컨택도 불안정했죠. 어느 사내 연설 장면에서는 무대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면서 쇼를 했는데, 마치 무대 위에서 방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네티즌들도 "원숭이 춤을 보는 것 같다", "미친 거 아냐" 등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마디로 잡스와는 비교가 안 됐습니다.
 
최 부원장은 데일 카네기의 이런 말로 이날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자신이 말하는 것에 열정을 담아라. 열정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스피치 법칙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다 준다."
링컨의 이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는 데 준비 시간의 3분의 2를 쓰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생각하는 데 나머지 3분의 1을 쓴다."
 
참 고로 HBR의 평가에서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스티브 잡스에 이어 2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닛산의 카를로스 곤 등을 제치고 29위에 랭크됐습니다. 정말 격세지감이 듭니다. 얼마 전 한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용산전자상가에 가면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쿠크 밥솥을 많이 사간다고 합니다. 국내의 식자층도 겸연쩍어 하면서 일제 코끼리 밥솥을 들고 입국장을 빠져나오던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이쯤 되면 거울을 보고 나르시시즘에 빠져들듯 우리 스스로 괄목상대해도 좋을 것 같군요.
 
이필재 jelpj@joongang.co.kr
from  http://blog.joins.com/jelp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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