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표현하지 않는 건축은 잘못된 것이다." —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Waechter Architecture-Dune House. Light by Way of Closure: A Coastal House Wrapped Like a Hide사구 위에 낮게 앉은 상자미국 오리건 북부 해안, 마을의 격자가 끝나고 모래언덕이 시작되는 자리에 집 한 채가 나직이 앉아 있다. 멀리서는 윤곽만 겨우 잡힌다. 해안 소나무 덤불이 벽의 아랫도리를 가린 데다 억새가 지붕선 가까이까지 밀려와 있어서다.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직육면체 위로, 완만한 물매의 지붕이 사방으로 흘러내린다. 그 마루에는 천창을 품은 자그마한 탑 하나만 솟아 있다. 벽과 지붕을 가르는 선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더 슁글(ceda..
"공간과 시간이 무엇을 뜻하든, 장소와 계기는 그보다 더한 것을 뜻한다." 알도 판 에이크Inrestudio uses double-layered envelope to create "in-between spaces" for Vietnamese home도시도 시골도 아닌 자리하노이 외곽, 홍강에서 멀지 않은 동네다. 낮은 기와지붕과 논밭 사이로 새 콘크리트 골조가 성큼 올라선 이 일대에 테라코타색 덩어리 하나가 묵직하게 앉아 있다. 베트남 사무소 인레스튜디오(Inrestudio)가 설계한 세대 통합 주택 100 Windows다. 이 집에 두 세대 세 가구가 산다. 부부와 두 아들, 아들 내외가 연면적 639제곱미터, 약 193평을 함께 나눠 쓴다.멀리서 보면 박공 윤곽 하나로 대뜸 집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
"다 풀고 났을 때 그 해답이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것이 틀렸음을 안다." —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 Carried by Scales, Emptied Within언덕 위에서 세 갈래로 벌어지다 청두 외곽, 나직한 구릉이 겹겹이 이어지는 자리에 은빛 덩어리 하나가 올라앉아 있다. 새로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 전시관과 곁의 전망탑이 한 쌍으로 눈에 들어온다. 두 건물은 쓰촨성에 들어설 신도시를 미리 알리는 표지다. 청두 미래과학기술도시(Chengdu Future Science and Technology City)라 부른다. 도시는 아직 공사 중이어서, 방문객은 완성된 거리 대신 이곳에서 앞으로 올 풍경을 먼저 만난다. 평면은 삼각형 바람개비를 닮았다. 세 갈래로 뻗은 전시홀은 저마다 다른 쪽으로..
"삶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공간이며, 건물은 마지막이다. 반대 순서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얀 겔(Jan Gehl), 『사람을 위한 도시』Nikken Sekkei-Machida Station Area Community Hub “Hatmachida”차를 위해 넓힌 길마치다는 도쿄 서쪽에 붙은 통근 도시다.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라마치다 대로는 애초에 자동차를 위해 그어진 길이다. 차가 빠르게 흐를수록 걷는 사람의 자리는 얇아졌고, 도심을 오가던 발길은 머무를 데를 찾지 못한 채 흩어졌다.도시를 이루는 요소 가운데 도로만큼 단단하게 제도화된 것도 드물다. 폭과 경계와 용도가 법으로 묶여 있어 좀처럼 손대기 어렵다. 닛켄셋케이가 이 대로의 한 귀퉁이에 22.7제곱미터, 약 6.9평의 건축을 밀어 넣은 ..
"집이 참된 집이 되려면 작은 도시와 같아야 하고, 도시가 참된 도시가 되려면 큰 집과 같아야 한다." — 알도 판에이크(Aldo van Eyck)MVRDV Reveals Bihailou Art Village in Shenzhen as a Vertical Village Interpretation광장에 선 낱낱선전 사터우자오(沙頭角)는 홍콩과 맞닿은 동네다. 그 한복판에 MVRDV가 설계한 비하이러우 예술촌이 올라가고 있다. 문화 시설과 상업 시설, 공공 공간을 한자리에 묶은 복합 건물인데 아직은 공사 중이다.광장 건너편에서 올려다보면 이 건물은 좀처럼 한 채로 보이지 않는다. 색도 크기도 제각각인 덩어리가 층층이 얹혀 있는데, 그 틈마다 유리 난간을 두른 테라스가 끼어든다. 붉은 벽돌을 입힌 덩어리 하나..
"집이 진짜 집이 되려면 작은 도시를 닮아야 하고, 도시가 진짜 도시가 되려면 커다란 집을 닮아야 한다."알도 판 에이크(Aldo van Eyck) OMA-The Martin Residential Building From Wall to Balcony: Four Interlocking Volumes at The Martin암스테르담 동쪽, 38년 동안 담장이 둘렀던 교도소 부지가 약 1,350호의 주거지로 바뀌고 있다. OMA가 설계한 더 마틴은 그 한가운데 올라앉았다. 건물은 탑 하나로 곧게 서는 대신 크기가 다른 네 덩어리로 갈라져 서로 맞물리고, 네 면을 도는 발코니를 알루미늄 격자가 한 벌로 묶는다. 가두던 장치를 걷어 낸 자리에서 경계를 무엇이 대신하는가. 더 마틴은 그 답을 입면의 깊이에서 찾는..
"만들 수 없는 것은 결코 설계하지 마라." — 장 프루베(Jean Prouvé) Supra-Simplicities-MOM House골목이 끝나는 자리 대만 남부 가오슝, 좁은 골목은 집 한 채 앞에서 끝난다. 대지는 그 막다른 끝에 깊숙이 앉아 있다. 세 면을 이웃 주택과 학교가 바짝 둘러싸고, 드나드는 길은 하나뿐이다. 진입도 채광도 통풍도 그 통로 하나에 매달리니, 대지는 처음부터 여유가 없다. 도시 조직이 촘촘해질수록 이런 자리는 안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운동장이 건네준 여백 그런데 담 하나 너머는 학교 운동장이다. 붉은 트랙과 파란 농구 코트가 비워낸 자리만큼 시야가 훤히 트인다. 빽빽한 동네 한복판에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숨통이어서, 설계는 이 여백을 대지가 지닌 가장 큰 자산으로 읽는다...
"미래의 건축가는 자연을 모방해 지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오래가며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 안토니 가우디Sinuous form of Shenzhen Natural History Museum emulates "a piece of landscape" A Land Without Squares — Shenzhen Natural History Museum Buries Its Threshold in the Terrain도시의 끝에서 능선이 일어선다선전 핑산구의 조밀한 시가지가 옌쯔호 쪽으로 풀리는 자리에, 흰 능선 하나가 길게 누워 도시의 끝을 눌러 놓고 있다. 연면적 10만 제곱미터, 약 3만 250평에 이르는 덩치가 멀리서는 건물로 보이지 않아서, 윤곽 대신 낮게 부푼 땅의 등이 먼저 눈에..
"건축가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변형한다." — 알바루 시자(Álvaro Siza)MVA Mikelić Vreš Arhitekti-Production and Office Building Dubrovčan폐기물이 쌓였던 자리자그레브 북서쪽에 두브로브찬이라는 마을이 있다. 낮은 능선과 밭이 이어지는 농촌 풍경이 마을을 감싸지만, 이 일대는 소규모 사업장과 산업 시설로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새 생산·업무 시설이 앉은 땅의 전신은 건설 폐기물 매립지다. 버려진 자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라는 뜻이다.설계는 매립지를 정화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오염을 걷어낸 자리에 새로운 지형이, 곧 새로운 자연이 들어선다. 본래의 경사를 따라 쌓아 올린 세 개의 흙 언덕이 가운데 공간과 보행 동선을 한꺼번에 규정..
“선형적 시간은 서구의 발명이다. 시간은 선형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얽혀 있다.” —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Suite Arquitetos-Apartamento JLS대로의 속도를 등지고상파울루에서도 손꼽히게 붐비는 대로가 이 집 곁을 지난다. 자동차와 소음, 사람들의 움직임이 하루 종일 쉼 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스위트 아르키테토스는 도시의 속도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대신 그와 반대되는 시간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다. 오래되고, 무겁고, 쉽게 변하지 않는 돌과 나무의 시간이다.가공을 최소화한 표면은 재료가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품는다. 이 집은 세월을 새기는 방식에서 도시보다 돌과 나무를 닮았다. 내부 공간 역시 벽과 문으로 명확하게 분절되기보다, 서로 다른 재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