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건물 측면을 비추기 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 못했다."— 루이스 칸 (Louis Kahn) OOIIO Arquitectura-Leganés Auto Center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건축 마드리드 광역권의 위성도시 레가네스. 자동차 산업에 특화된 이 공업단지를 처음 걷는 사람이라면, 주변 건물들이 얼마나 무표정한지 금세 알아챈다. 예외 없이 기능만 남겨진 외피들, 빛도 재료도 감정도 없는 건물들이 줄지어 선 이 풍경 속에서, OOIIO 아르키텍투라가 설계한 레가네스 오토 센터는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흰색 슬래트가 민트그린 구조체 위에서 리듬을 만들며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뒤로 반짝이는 산업용 덕트가 파사드의 일부인 양 당당하게 솟아 있다. 자동차 판매·수리 센터가 이렇게..
"건축은 풍경이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엔릭 미라예스 (Enric Miralles) Comas-Pont arquitectes-Landscape Staircase in the Vall del Pardís사라진 길의 기억 스페인 카탈루냐 만레사(Manresa), 카르데네르강(Cardener River)이 굽어 보이는 절벽 위에는 한때 사람들이 오가던 오솔길이 있었다. 1522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of Loyola)는 이 길을 걸으며 훗날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s)의 씨앗이 될 사유를 키웠다. 도시 레스 에스코디네스(Les Escodines) 구역의 여성들은 이 길을 따라 카르데네르강으로 내려갔다. 폰트 벨(Pont Vell)과 크레우 델 토르트(Creu d..
"나는 건물을 지우고 싶다. 풍경이 건축보다 더 강하게 말하도록."— 구마 겐고 (隈 研吾) CSWADI-Main Pavilion of the International Horticultural Exhibition 2024 Chengdu땅과 물이 만나는 자리 중국 청두 동부 신구, 강샤호(錦霞湖)를 끼고 완만하게 펼쳐진 구릉지에 2024 청두 국제원예박람회의 심장부가 자리한다. 중국서남건축설계연구원(CSWADI)이 설계한 주관 파빌리온은 연면적 2만 3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대형 공공건축으로, 박람회 폐막식과 국제 화훼 경연, 국제 포럼을 아우르는 핵심 무대가 되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시민 문화 센터로 전환되어 일상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 예정이다. 설계의 출발점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사천(四川)의 자연과..
"나는 건축을 지우고 싶다. 건물이 대지와 경관 속으로 녹아드는, 그런 건축을 만들고 싶다."— 구마 겐고 (隈研吾) Traditional wooden townhouses inform interiors of Kengo Kuma-designed Capella Kyoto hotel골목이 품은 논리 교토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기온 거리 한 켠, 오래된 초등학교 터 위에 구마 겐고 건축사무소가 카펠라 교토를 설계했을 때, 그 주변 골목에는 이미 하나의 건축 언어가 수백 년째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마치야(町家), 교토 고유의 전통 목조 도시형 주택이다. 마치야는 앞쪽에 작은 상점을 두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생활 공간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는 정원이나 중정이 끼어들며..
"나무는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소재다. 그 어떤 재료보다 인간의 삶에 가까이 닿아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Cukrowicz Nachbaur Architekten-Eugen-Bolz Student Residence공원 속 집 오이겐 볼츠 학생 기숙사 증축 건물은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 교구가 새로 세운 집이다. 건물이 선택한 자리는 아름다운 도심 공원 한가운데다. 건물 몸체는 거의 열린 기단부 위로 가볍게 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건축적 선택이 아니다. 종교와 교파를 초월해 모든 이를 품겠다는 이 집의 정신이, 구조 자체로 말을 건네는 방식이다. 나무를 닮은 설계 설계의 출발점은 나무의 형태다. 풍경은 사방으로 막힘 없이 흐르고, 시선은 어느 방향으로든..
"먼저 삶이, 그 다음 공간이, 마지막으로 건물이다. 그 반대 순서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얀 겔 (Jan Gehl) 도시의 켜를 다시 쌓다: 탄소를 낮춘 복합의 탑 MVRDV — Tour & Taxis Towers, Brussels 마스터플랜의 씨앗 브뤼셀 북서쪽, 오래된 산업 물류 지구였던 투어 앤 택시스(Tour & Taxis)에 새로운 켜가 쌓이고 있다. 로테르담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건축 사무소 MVRDV가 이 지구의 도시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것은 2019년의 일이다. 단순한 건축물 설계가 아니었다. 주거와 업무, 상업과 공공 프로그램을 어떻게 밀도 있게 배치하면서도 주변 도시 조직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 도시적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었다. MVRDV는 2017년부터 수립된 지..
"건물은 스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루이스 칸 (Louis Kahn) Graham Baba Architects-West Canal Yards도시의 끝자락, 운하의 기억 시애틀의 십 캐널(Ship Canal) 연안, 볼라드(Ballard)와 퀸 앤(Queen Anne) 사이의 좁고 긴 땅에 두 채의 건물이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한때 시애틀 어업의 핵심 거점이었던 이 자리에는 수산물 가공 공장과 약 2,800㎡ 규모의 냉동 창고가 나란히 서 있었다. 거칠고 단단한 이 구조물들은 도시가 팽창하는 동안에도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켰고, 이제 Graham Baba Architects(GBA)의 손에 의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지가 말하는 것들 대지가 품고 있던 가능성은 상..
"나는 건축이 환경 속으로 스며들기를 원한다.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처럼."— 구마 겐고 (隈 研吾)NOFORMA-Atami House발견의 도시, 아타미 에도와 교토를 잇던 고대 가도, 도카이도를 따라 자리한 도시 아타미.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불과 사십 분 거리에 있는 이 도시의 이름은 '뜨거운 바다'를 뜻한다. 해저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온천수가 바다를 데운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타미는 역사와 지질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도시다. NOFORMA는 바로 이 언덕 위 바닷가에 자리한 오래된 일본 가옥의 개보수 작업을 맡으면서, 뜻하지 않은 발견과 마주쳤다. 숨겨진 뼈대를 찾다 구조 조사 과정에서 마감 천장 위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의 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천연 목재 보들이..
"나는 발명하지 않는다. 나는 적응한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Álvaro Siza Vieira) Spaceworkers transforms Portuguese granaries into museum with red-concrete extension나란한 두 선체 포르투갈 알가르브 남단, 빌라 두 비스푸(Vila do Bispo)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 한켠에 두 동의 낡은 양식 창고가 서 있었다. 오래된 박공지붕, 규칙적으로 뚫린 작은 창들, 세월에 바랜 회색 외벽. Spaceworkers는 이 창고들을 허물거나 가리는 대신, 그 곁에 나란히 새 몸체를 붙였다. 스튜디오가 두 건물을 "나란히 선 두 선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붉은 안료 콘크리트 기단 위에서 옛것과 새것은 하나의 앙상블로 ..
"건축이란 대지의 연장이다. 마치 식물이 뿌리로부터 자라나듯, 건물도 그 땅으로부터 솟아올라야 한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safdie architects plans cherokee heritage center as a cluster of earth-toned blocks대지와 함께 낮게 엎드린 캠퍼스 오클라호마 주 탈리쿼(Tahlequah)의 숲지대에 새피디 아키텍츠(Safdie Architects)가 설계한 체로키 헤리티지 센터(Cherokee Heritage Center)가 들어선다. 건물군은 대지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지형의 굴곡을 따라 낮게 엎드린 채, 경사가 제각각인 지붕들은 햇빛을 저마다 다른 각도로 받아내며 숲의 수관(樹冠) 아래로 조용히 스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