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바다 사이의 결정적 경계를 기념하는 다기능 시민 인프라.” — RUR Architecture DPC A Section that Folds the Port into the City항만은 오랫동안 도시 바깥이었다. 물류와 보안, 거대한 선박이 일상 보행을 밀어냈으며, 부두는 바다를 가장 가까이 두고도 시민에게는 먼 장소로 남곤 했다. 가오슝 포트 터미널은 이 익숙한 경계를 지우기보다 높이 차로 다시 짠다. 산업과 여객, 시민 활동을 서로 다른 레벨에 놓은 뒤, 굴곡진 단면으로 연결해 항만을 도시 안으로 접어 올린다.세 개의 도시가 포개진 항구프로젝트는 평면이 아니라 단면에서 출발하며, 도시 관계를 높이로 다시 짠다. RUR Architecture DPC는 세 활동 레벨을 세웠다. 지상 산업·도시 기..
“저렴하고 익숙한 건축 재료를 환경 장치로 재구성한다.”— scale50 From Ordinary Metal to a Climatic Envelope학교에 더해진 새로운 체육관호찌민의 Phan Chau Trinh 학교는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캠퍼스의 시설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새 체육관도 그 과정에 놓인다. 기존 교사 옆에 들어선 건물은 반듯한 금속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을 감싼 가는 골과 수평의 이음이 드러난다. 학생들이 그 앞을 지나 큰 문으로 들어가는 사진은 체육관이 캠퍼스의 일상에 놓였음을 보여준다.두 겹의 벽이 맡은 일외벽의 골강판과 안쪽 시멘트 패널 사이에는 공기층이 있다. 설계자는 이 틈으로 공기가 돌고 바깥층이 햇빛과 비를 걸러내도록 계획했다고 설명한다. 단면과 분해도..
"먼저 삶, 그다음 공간, 마지막에 건물. 반대 순서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얀 겔(Jan Gehl)Closed Bowl, Open Surface1950년대 링크가 남긴 자리체코 이흘라바 구시가 가장자리에는 1950년대부터 아이스링크가 오래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링크를 걷어내고 새 시설을 도심에 다시 붙이는 일이 시가 내건 조건이었다. 히비크 + 크리슈토프는 2019년 공모에서 이 조건을 안고 설계권을 얻었으며, 경기장은 2025년 11월 문을 열었다.대형 실내경기장은 도시를 등지기 쉽다. 관중석과 빙판을 감싸다 보면 창 없는 벽이 길게 이어지면서 설비와 하역구가 지면을 차지한다. 주차장 한복판에 홀로 선 상자, 경기가 끝나는 순간 불이 꺼져버리는 커다란 덩어리가 흔한 결말이다. 첨탑과 박공지붕이..
"순간을 다시 살려낼 때에야 우리는 과거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스베레 펜(Sverre Fehn)COOKFOX-Bruce Springsteen Center for American Music공간의 건축, 시간의 음악건축은 자리를 차지하고 음악은 시간 속을 흐르므로, 둘은 애초에 셈법이 다르다. 흘러가는 예술을 어떻게 한자리에 붙박아 둘 것인가. 쿡폭스는 이 물음을 설계의 첫 조건으로 삼았다. 형태를 다듬는 대신 재료와 경험 쪽에서 답을 찾았으니, 다 지은 순간보다 앞으로 변해 갈 시간이 건물의 주제가 된다. 내후성강판에 번지는 녹, 목재에 남은 성장의 자국, 입면을 훑고 지나가는 볕이 저마다 시간을 실어 나른다.초지를 가로지르는 널판 길뉴저지주 롱브랜치의 몬머스대학교 캠퍼스에서 방문객은 건물보다 초지..
"건축은 가장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봉사다. 쓸모를 낳는 예술이다."— 렌초 피아노(Renzo Piano)OYO Architects perches steel-framed office on harbourside warehouse. The Raised Deck — Splitting Warehouse and Office to Win Back the Port항만이 먼저 내미는 얼굴오스텐더 항 부두를 따라 걸으면 컨테이너와 폐기물 수거함, 노란 갠트리 크레인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잡다한 앞마당 너머로 회색 콘크리트 벽이 나직이 뻗어 있다. 벽 위에는 붉은 강철 상자가 세 개 층을 포갠 채 떠 있는데, 벽의 끝선을 훌쩍 넘겨 허공으로 몸을 내민다. 그 무게를 가느다란 붉은 기둥 하나가 받아 창고 지붕까지 내려온..
"다 풀고 났을 때 그 해답이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것이 틀렸음을 안다." —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 Carried by Scales, Emptied Within언덕 위에서 세 갈래로 벌어지다 청두 외곽, 나직한 구릉이 겹겹이 이어지는 자리에 은빛 덩어리 하나가 올라앉아 있다. 새로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 전시관과 곁의 전망탑이 한 쌍으로 눈에 들어온다. 두 건물은 쓰촨성에 들어설 신도시를 미리 알리는 표지다. 청두 미래과학기술도시(Chengdu Future Science and Technology City)라 부른다. 도시는 아직 공사 중이어서, 방문객은 완성된 거리 대신 이곳에서 앞으로 올 풍경을 먼저 만난다. 평면은 삼각형 바람개비를 닮았다. 세 갈래로 뻗은 전시홀은 저마다 다른 쪽으로..
"삶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공간이며, 건물은 마지막이다. 반대 순서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얀 겔(Jan Gehl), 『사람을 위한 도시』Nikken Sekkei-Machida Station Area Community Hub “Hatmachida”차를 위해 넓힌 길마치다는 도쿄 서쪽에 붙은 통근 도시다.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라마치다 대로는 애초에 자동차를 위해 그어진 길이다. 차가 빠르게 흐를수록 걷는 사람의 자리는 얇아졌고, 도심을 오가던 발길은 머무를 데를 찾지 못한 채 흩어졌다.도시를 이루는 요소 가운데 도로만큼 단단하게 제도화된 것도 드물다. 폭과 경계와 용도가 법으로 묶여 있어 좀처럼 손대기 어렵다. 닛켄셋케이가 이 대로의 한 귀퉁이에 22.7제곱미터, 약 6.9평의 건축을 밀어 넣은 ..
"집이 진짜 집이 되려면 작은 도시를 닮아야 하고, 도시가 진짜 도시가 되려면 커다란 집을 닮아야 한다."알도 판 에이크(Aldo van Eyck) OMA-The Martin Residential Building From Wall to Balcony: Four Interlocking Volumes at The Martin암스테르담 동쪽, 38년 동안 담장이 둘렀던 교도소 부지가 약 1,350호의 주거지로 바뀌고 있다. OMA가 설계한 더 마틴은 그 한가운데 올라앉았다. 건물은 탑 하나로 곧게 서는 대신 크기가 다른 네 덩어리로 갈라져 서로 맞물리고, 네 면을 도는 발코니를 알루미늄 격자가 한 벌로 묶는다. 가두던 장치를 걷어 낸 자리에서 경계를 무엇이 대신하는가. 더 마틴은 그 답을 입면의 깊이에서 찾는..
"만들 수 없는 것은 결코 설계하지 마라." — 장 프루베(Jean Prouvé) Supra-Simplicities-MOM House골목이 끝나는 자리 대만 남부 가오슝, 좁은 골목은 집 한 채 앞에서 끝난다. 대지는 그 막다른 끝에 깊숙이 앉아 있다. 세 면을 이웃 주택과 학교가 바짝 둘러싸고, 드나드는 길은 하나뿐이다. 진입도 채광도 통풍도 그 통로 하나에 매달리니, 대지는 처음부터 여유가 없다. 도시 조직이 촘촘해질수록 이런 자리는 안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운동장이 건네준 여백 그런데 담 하나 너머는 학교 운동장이다. 붉은 트랙과 파란 농구 코트가 비워낸 자리만큼 시야가 훤히 트인다. 빽빽한 동네 한복판에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숨통이어서, 설계는 이 여백을 대지가 지닌 가장 큰 자산으로 읽는다...
"건축은 빛 속에 모인 매스들이 펼치는 능숙하고 정확하며 장엄한 유희다." —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Wittfoht Architekten-Neckarbogen Neighborhood Parking Garage도시의 모서리에서 일렁이는 빛 하일브론(Heilbronn)의 새 도시 구역 네카어보겐(Neckarbogen)을 걷다 보면, 거리 끝에서 한 덩어리의 은빛 건물이 빛을 따라 천천히 일렁이는 장면과 마주한다. 절곡한 타공 금속 패널이 저마다 다른 깊이로 접히며 표면을 덮고, 그 위로 햇빛이 미끄러질 때마다 건물은 수면 위로 번지는 잔물결처럼 살아 움직인다. 멀리서 보면 가볍고 투명한 막 같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손끝으로 만져질 듯 또렷한 입체의 질감이 드러난다. 도시의 새 구역에 강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