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가장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봉사다. 쓸모를 낳는 예술이다."— 렌초 피아노(Renzo Piano)OYO Architects perches steel-framed office on harbourside warehouse. The Raised Deck — Splitting Warehouse and Office to Win Back the Port항만이 먼저 내미는 얼굴오스텐더 항 부두를 따라 걸으면 컨테이너와 폐기물 수거함, 노란 갠트리 크레인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잡다한 앞마당 너머로 회색 콘크리트 벽이 나직이 뻗어 있다. 벽 위에는 붉은 강철 상자가 세 개 층을 포갠 채 떠 있는데, 벽의 끝선을 훌쩍 넘겨 허공으로 몸을 내민다. 그 무게를 가느다란 붉은 기둥 하나가 받아 창고 지붕까지 내려온..
"다 풀고 났을 때 그 해답이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것이 틀렸음을 안다." —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 Carried by Scales, Emptied Within언덕 위에서 세 갈래로 벌어지다 청두 외곽, 나직한 구릉이 겹겹이 이어지는 자리에 은빛 덩어리 하나가 올라앉아 있다. 새로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 전시관과 곁의 전망탑이 한 쌍으로 눈에 들어온다. 두 건물은 쓰촨성에 들어설 신도시를 미리 알리는 표지다. 청두 미래과학기술도시(Chengdu Future Science and Technology City)라 부른다. 도시는 아직 공사 중이어서, 방문객은 완성된 거리 대신 이곳에서 앞으로 올 풍경을 먼저 만난다. 평면은 삼각형 바람개비를 닮았다. 세 갈래로 뻗은 전시홀은 저마다 다른 쪽으로..
"삶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공간이며, 건물은 마지막이다. 반대 순서는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 얀 겔(Jan Gehl), 『사람을 위한 도시』Nikken Sekkei-Machida Station Area Community Hub “Hatmachida”차를 위해 넓힌 길마치다는 도쿄 서쪽에 붙은 통근 도시다.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라마치다 대로는 애초에 자동차를 위해 그어진 길이다. 차가 빠르게 흐를수록 걷는 사람의 자리는 얇아졌고, 도심을 오가던 발길은 머무를 데를 찾지 못한 채 흩어졌다.도시를 이루는 요소 가운데 도로만큼 단단하게 제도화된 것도 드물다. 폭과 경계와 용도가 법으로 묶여 있어 좀처럼 손대기 어렵다. 닛켄셋케이가 이 대로의 한 귀퉁이에 22.7제곱미터, 약 6.9평의 건축을 밀어 넣은 ..
"집이 진짜 집이 되려면 작은 도시를 닮아야 하고, 도시가 진짜 도시가 되려면 커다란 집을 닮아야 한다."알도 판 에이크(Aldo van Eyck) OMA-The Martin Residential Building From Wall to Balcony: Four Interlocking Volumes at The Martin암스테르담 동쪽, 38년 동안 담장이 둘렀던 교도소 부지가 약 1,350호의 주거지로 바뀌고 있다. OMA가 설계한 더 마틴은 그 한가운데 올라앉았다. 건물은 탑 하나로 곧게 서는 대신 크기가 다른 네 덩어리로 갈라져 서로 맞물리고, 네 면을 도는 발코니를 알루미늄 격자가 한 벌로 묶는다. 가두던 장치를 걷어 낸 자리에서 경계를 무엇이 대신하는가. 더 마틴은 그 답을 입면의 깊이에서 찾는..
"만들 수 없는 것은 결코 설계하지 마라." — 장 프루베(Jean Prouvé) Supra-Simplicities-MOM House골목이 끝나는 자리 대만 남부 가오슝, 좁은 골목은 집 한 채 앞에서 끝난다. 대지는 그 막다른 끝에 깊숙이 앉아 있다. 세 면을 이웃 주택과 학교가 바짝 둘러싸고, 드나드는 길은 하나뿐이다. 진입도 채광도 통풍도 그 통로 하나에 매달리니, 대지는 처음부터 여유가 없다. 도시 조직이 촘촘해질수록 이런 자리는 안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운동장이 건네준 여백 그런데 담 하나 너머는 학교 운동장이다. 붉은 트랙과 파란 농구 코트가 비워낸 자리만큼 시야가 훤히 트인다. 빽빽한 동네 한복판에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숨통이어서, 설계는 이 여백을 대지가 지닌 가장 큰 자산으로 읽는다...
"건축은 빛 속에 모인 매스들이 펼치는 능숙하고 정확하며 장엄한 유희다." —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Wittfoht Architekten-Neckarbogen Neighborhood Parking Garage도시의 모서리에서 일렁이는 빛 하일브론(Heilbronn)의 새 도시 구역 네카어보겐(Neckarbogen)을 걷다 보면, 거리 끝에서 한 덩어리의 은빛 건물이 빛을 따라 천천히 일렁이는 장면과 마주한다. 절곡한 타공 금속 패널이 저마다 다른 깊이로 접히며 표면을 덮고, 그 위로 햇빛이 미끄러질 때마다 건물은 수면 위로 번지는 잔물결처럼 살아 움직인다. 멀리서 보면 가볍고 투명한 막 같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손끝으로 만져질 듯 또렷한 입체의 질감이 드러난다. 도시의 새 구역에 강렬..
"나는 감정의 건축을 믿는다. 건축이 그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루이스 바라간 gh3*-O-day'min Park Pavilion주차장이 공원이 되기까지 에드먼턴 도심, 빠르게 변모하는 웨어하우스 캠퍼스 지구에 새로운 공공의 자리가 열렸다. 한때 아스팔트로 뒤덮인 노상 주차장이던 땅이 활기를 머금은 오데이민 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에드먼턴시가 의뢰한 이 공원은 낮은 밀도의 산업 부지를 밀도 높은 복합 주거 커뮤니티로 이끄는 전환의 촉매가 된다. 공원과 그 안의 파빌리온은 도심 생활을 떠받치고 지역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눈에 잘 띄는 초기 공공 투자다. 동시에 새로운 공공 영역이 어떤 수준이어야 하는지를 도시에 처음으로 내보이는 선언이기도 하다. 붉은 볼트, 공원..
"집은 언덕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언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집과 언덕이 함께 살 때, 비로소 둘 다 더 행복해진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Off-Grid and Fire-Ready: A Corten-Clad House in the California Mountains by Faulkner Architects불의 기억과 재건의 의지 2019년 킨케이드(Kincade) 산불이 캘리포니아 힐즈버그(Healdsburg) 북동쪽 마야카마스 산맥(Mayacamas Mountains)의 외딴 대지를 휩쓸었을 때, 그 자리에 서 있던 자립형 주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주자들은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단, 자신들의 방식으로. 샌프란시스코(San Franc..
"태양은 건물 측면을 비추기 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 못했다."— 루이스 칸 (Louis Kahn) OOIIO Arquitectura-Leganés Auto Center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건축 마드리드 광역권의 위성도시 레가네스. 자동차 산업에 특화된 이 공업단지를 처음 걷는 사람이라면, 주변 건물들이 얼마나 무표정한지 금세 알아챈다. 예외 없이 기능만 남겨진 외피들, 빛도 재료도 감정도 없는 건물들이 줄지어 선 이 풍경 속에서, OOIIO 아르키텍투라가 설계한 레가네스 오토 센터는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흰색 슬래트가 민트그린 구조체 위에서 리듬을 만들며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뒤로 반짝이는 산업용 덕트가 파사드의 일부인 양 당당하게 솟아 있다. 자동차 판매·수리 센터가 이렇게..
"건축은 풍경이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엔릭 미라예스 (Enric Miralles) Comas-Pont arquitectes-Landscape Staircase in the Vall del Pardís사라진 길의 기억 스페인 카탈루냐 만레사(Manresa), 카르데네르강(Cardener River)이 굽어 보이는 절벽 위에는 한때 사람들이 오가던 오솔길이 있었다. 1522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of Loyola)는 이 길을 걸으며 훗날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s)의 씨앗이 될 사유를 키웠다. 도시 레스 에스코디네스(Les Escodines) 구역의 여성들은 이 길을 따라 카르데네르강으로 내려갔다. 폰트 벨(Pont Vell)과 크레우 델 토르트(Creu d..